“나 같아도 올해는 김장 안 할 것 같아. 사 먹는게 저렴한데 굳이 비싼 돈 주고 노동까지 할 필요가 있나.”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4)씨 앞에는 팔리지 않은 채소 박스들이 가득했다. 김씨는 “한동안 배춧값이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다른 채소들이나 양념 재료들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매년 이맘때면 김장 재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 올해는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박모(66)씨는 반찬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박씨는 “김장철에 김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는데, 올해는 다른 분위기”라며 “매출이 늘어 좋지만, 인근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다른 사장들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채소가게에 배추 등 채소들이 쌓여있다./채민석 기자

김장철이 시작됐지만, 김치 속재료로 쓰이는 채소 가격이 오르면서 김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일 기준 가을무 20㎏의 평균 가격은 1만5800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7%, 평년 대비 31.3% 오른 수준이었다. 양파 15㎏의 가격도 2만3540원으로, 평년 대비 약 60% 올랐다. 국산 깐마늘의 가격은 20㎏당 16만3667원으로 평년 대비 약 30%, 대파 1㎏의 가격은 2282원으로 평년 대비 12% 상승했다.

소금과 고춧가루, 액젓 등 양념 재료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굵은소금 5㎏의 소매가는 1만1854원으로 평년(7503원) 대비 약 58% 올랐다. 멸치 액젓은 평년 대비 12.5% 올랐으며, 고춧가루에 사용되는 건고추 30㎏의 가격도 평년 대비 6.5% 상승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대형마트 기준으로 4인 김장 비용이 지난해 42만원에서 올해는 47만3090원으로 약 12% 올랐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겨울 김장을 포기하고 김치를 구매해서 먹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장 수요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620명 중 30.2%가 ‘지난해보다 적게 담글 것’이라고 답했다. 이 중 35%는 그 이유로 ‘비용 문제’를 꼽았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주부 한모(52)씨는 “매년 김장철에 가족들이 모여 직접 김치를 담가 나눠 가져갔는데, 올해는 물가가 너무 올라 각자 알아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장의 주재료인 배춧값이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다른 재료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김장 자체를 포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김장 인구가 줄어드는 대신 반찬가게나 김치 제조 전문 업체에는 손님이 몰리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김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45)씨는 “올해 매출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었던 지난해보다 약 40%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손님들에게 ‘김장 안 하시냐’고 물어보면 ‘사 먹는 게 훨씬 저렴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11월 1일부터 9일까지 포장 김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3% 상승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채솟값이 상승한 것이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을 만든 요인이 될 수 있다. 김치 속재료 가격도 폭등해 소비자들이 ‘물가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으로 김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밀키트 등이 등장하며 김장을 간편하게 하려는 트렌드가 반영돼 김장 인구가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