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사이언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SK바이오사이언스

국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잇달아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셀트리온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의 생산을 중단한 데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도 ‘공급 대기’ 상태다.

국내 정부나 해외에서 추가 수요가 없을 경우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술로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한 성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 없이 글로벌 기업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년 시절부터 국제대회 출전을 준비한 프로선수와 아마추어의 대결에 불과하다며 꾸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송파구보건소 관계자가 SK바이오사이언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접종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국산 1호’ 타이틀 무색…비운의 코로나19 백신·치료제

24일 SK바이오사이언스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은 현재 원액으로만 생산 중이다. 백신은 원액 생산 후 시장 수요에 따라 완제로 생산해 공급된다. 원액으로만 생산한다는 의미는 현재 공급이 없다는 의미로, 공급 대기 상태인 셈이다.

추가 공급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11월 22일 기준 1~4차 접종(1974도즈)과 동절기 추가접종(1691도즈)에 투입된 스카이코비원은 총 3665도즈다. 정부가 지난 9월 초도 물량으로 공급받은 물량(60만도즈) 가운데 활용 비율은 0.61%에 그친다. 정부와 SK바이오사이언스는 총 1000만도즈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이달 23일 브리핑에서 “아직 도입이 되지 않았지만 계약이 완료돼 도입 예정인 물량도 개량백신으로 개발·공급되지 않는다면 활용이 제한적이라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아직 도입이 되지 않았지만 계약이 완료돼 도입 예정인 물량도 개량백신으로 개발·공급되지 않는다면 활용이 제한적이라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사진은 충북 청주시 한 병원에서 화이자 개량백신을 맞고 있는 백 청장의 모습. /질병관리청

스카이코비원은 올해 6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정식 품목허가를 받은 국산 1호 백신이다.

지난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보고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이었다. 지난해 2월 글로벌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이 국내로 들어온 지 1년 4개월 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식 품목허가 이후 반년도 되지 않아 기로에 섰다. 개량백신으로 개발되거나, 수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생산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원액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중단은 아니다”라며 “추후 있을 공급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 /셀트리온

스카이코비원은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2월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의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같은 해 9월 정식 허가를 받았다. 그러다 올해 2월 신규 공급을 중단했다.

렉키로나는 초기 바이러스(우한주)를 기반으로 개발됐지만,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대로 중화능이 떨어졌다. 이는 바이러스 무력화 능력이 감소했다는 의미다. 미국 화이자, 머크가 먹는 치료제를 내놓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스카이코비원이 역시 우한주를 기반으로 개발됐고, 화이자와 모더나의 개량백신 공급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상태다.

◇안 열리는 ‘100兆’ 코로나19 백신 시장…”원천기술 없는 韓, 글로벌 경쟁 안 돼”

코로나19는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세계 매출 상위 10대 의약품에는 코로나19 백신 3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3종의 매출만 100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조사기관인 이밸류에이트 파마에 따르면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으로만 400억달러, 53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모더나는 180억달러(약 24조원), 중국 시노백은 190억달러(25조원)를 벌어들였다.

정부가 미국 화이자로부터 구매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구용(먹는) 치료제가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을 통해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이자와 머크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도 지속해서 매출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화이자는 올해 팍스로비드 매출을 220억달러(약 29조원), 머크는 라게브리오로 최대 55억달러(약 7조원)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세계 코로나19 치료제 시장이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10.2% 성장해 510억달러(약 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업체는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시장을 공략하지 못했다. 시장에서 1%만 차지하면 매출 1조원을 기록할 수 있지만,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국내 대형 제약사들의 연 매출에 육박하는 금액을 단일 품목으로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에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만한 원천기술이 없는 게 가장 큰 한계”라며 “수십년 동안 준비한 프로선수와 아마추어가 경쟁을 벌이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메르스부터 시작해 현재 코로나19까지 원천기술 확보를 강조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국내서 화이자와 모더나 같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플랫폼을 개발했더라도 상용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제약·바이오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국내 정서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부나 기업들이 모두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