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0억원 내외 팹리스 접촉
국내서 설계→생산 생태계 조성
국산화율 높여 안정적 조달 모색

현대자동차가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올해 초부터 본격 가동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와 협업해 국내에서 반도체를 생산·조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차 시대엔 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갯수가 급증하는 데 ‘제2의 차량용 반도체 대란’을 막기 위해 해외 의존도를 대폭 낮추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올 초부터 국내 다수의 팹리스 업체와 접촉해 차량용 반도체 개발 의뢰를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상 단계였던 이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진도를 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차가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문 팹리스 기업과 협업해 빨리 상용화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모델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국내에 본사를 둔 매출 1000억원 내외 규모 기업으로서 현대차에 공급 이력이 있는 팹리스를 중심으로 협업을 추진 중이다. 팹리스에 반도체 설계를 의뢰하고 까다로운 테스트와 검증을 거쳐 품질 승인이 나면,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전문기업)에서 반도체를 생산해 직접 공급받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현대차의 차량용 반도체 해외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인피니온, NXP, 르네사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유럽·일본 기업들이 주요 거래처다.
차량용 반도체는 소수 기업이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과점시장이다. 코로나19 펜데믹 여파로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발생했을 당시, 차량용 반도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 완성차 업계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현대차가 국산화 프로젝트에 뛰어든 건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확보 능력이 곧 미래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주류가 될 전기차, 자율주행차에는 내연기관차의 10배가 넘는 2000개 이상의 차량용 반도체가 탑재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공장이 멈추고 차량 출고까지 1년 이상 미뤄져 판매에 타격을 입었던 점도 현대차가 ‘차량용 반도체 헤게모니’를 쥐어야한다는 판단에 힘을 실었다.
반도체 자체 수급 능력을 키우면 ‘갑 같은 을’인 글로벌 공급기업과의 가격 협상력을 올리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유럽·일본 등 글로벌 기업은 가격 협상이 쉽지 않고, 납기나 기술 지원(AS)도 국내 기업보다 원활치 않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향후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국산화율을 지속적으로 높일 방침이다. 앞서 현대차는 2025년부터 삼성전자로부터 인포테인먼트용 고부가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조격, 소모성으로 활용되는 범용 반도체부터 핵심적인 구동과 관련한 하이엔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국산화 비중을 높여서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해 중장기로 안정적인 공급망관리(SCM)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