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남 창원 성산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창원1사업장 엔진조립동에선 직원들이 거대한 기계 장치를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치는 한국형 구축함 정조대왕급 2번함의 심장이 될 가스터빈 엔진 ‘LM2500′이었다.
몇 걸음을 옮기자 또다른 엔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산 경공격기 FA-50에 들어가는 항공엔진 ‘F404′였다. 이 곳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항공기용 가스터빈 엔진을 만드는 공장이다. 구축함과 전투기에 들어갈 엔진이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20여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엔진 조립 작업에 열중했다.
내년 10월 4차 발사를 앞둔 누리호 엔진도 이 곳에서 조립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투기, 군함용 엔진을 만들며 쌓아 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우주발사체인 누리호 엔진 제작에 그대로 녹여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 기업이자 항공우주 기업이다. 2021년 한화 그룹이 우주 사업을 하는 계열사 세 곳을 모아 출범한 ‘스페이스 허브’의 맏형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허브에는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국내 최초의 민간 위성 기업 쎄트렉아이(099320), 국방용 위성을 개발하는 한화시스템(272210)이 참여하고 있다.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를 이끌어갈 기업들이다.
한화는 스페이스 허브를 발판으로 누리호의 상업화와 차세대발사체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발사체 시장의 주요 고객인 위성을 자체 개발하고 위성 운용, 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프라(기반 시설)도 갖췄다. 발사체, 위성, 위성서비스로 이어지는 우주사업 밸류 체인의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누리호 상업화의 열쇠는 ‘비용 절약’ 스마트 팩토리로 해결
엔진조립동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자리한 스마트팩토리에서는 엔진 부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3300평(약 1만㎡)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도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로봇팔이 여러 공구를 사용해 금속 원판을 깎아내고 있었다.
공장 내부에는 직원 대신 거대한 무인운반로봇(AGV)이 돌아다녔다. 로봇의 앞을 가로막자 움직임을 멈추고 길을 비켜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출발했다. 운반로봇 위에는 로봇팔이 만든 엔진 부품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운반로봇은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각 부품이 필요한 공정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엔진 부품을 만드는 각 구역 옆으로는 천장에 닿을 듯 높게 쌓인 선반이 자리하고 있다. 선반에는 완성된 부품이 자동으로 쌓인다. 다음 공정으로 부품을 옮기는 것조차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팩토리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공정은 모두 자동으로 이뤄진다.
심필승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술팀장은 “작업자 2명이면 스마트팩토리를 가동하는 데 무리 없는 수준”이라며 “엔진 제작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전투기, 군함용 엔진용 부품을 만드는 스마트팩토리 기술은 앞으로 우주발사체 엔진 제작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누리호 엔진에는 37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들어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누리호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해 상업화하기 위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의 주관 기업에 선정됐다. 지난해 5월 성공적으로 발사를 마친 누리호 엔진 제작에 참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앞으로 남은 3차례의 발사에서 체계종합기업을 맡는다. 누리호 제작에 필요한 기술도 이전받아 상용 발사체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상업용 발사체로 자리매김하려면 무엇보다 합리적인 발사 비용이 중요하다. 스마트팩토리는 누리호의 생산 단가를 낮출 핵심 시설이다.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사업부장은 “엔진 제작 공정을 합리화하고 단순화해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앞으로 누리호의 상용 생산이 시작돼 많은 물량을 생산할 때 스마트팩토리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우주 산업, 위성 만들고 데이터 활용도
이튿날인 21일 대전 쎄트렉아이 문지연구소에서는 상용 위성으로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자광학 지구관측(EO) 위성 ‘스페이스아이-T’의 제작이 한창이었다. 스페이스아이-T는 30㎝급 초고해상도를 가진 대형 위성이다. 30㎝ 해상도의 위성은 지상의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민간 위성 중에서는 최고 성능이다. 군용 위성은 이보다 성능이 우수하지만, 민간 위성이 이 정도 성능을 가진 것은 채 10기가 되지 않는다.
이튿날인 21일 대전 쎄트렉아이 문지연구소에서는 상용 위성으로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자광학 지구관측(EO) 위성 ‘스페이스아이-T’의 제작이 한창이었다. 스페이스아이-T는 30㎝ 급 초고해상도를 가진 대형 위성이다. 30㎝ 해상도의 위성은 지상의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민간 위성 에서는 최고 성능이다. 군용 위성에서는 이보다 우수한 성능의 위성이 사용되고 있으나 현재 활동하는 비슷한 성능의 민간 위성은 10기도 채 되지 않는다.
김도형 쎄트렉아이 사업개발실장은 “지금까지 판매를 위한 위성을 만들어 왔으나 이제 우리 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면 이제는 택시 사업처럼 위성 서비스까지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페이스아이-T는 우주에서 지상의 자동차 종류와 색상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해상력을 갖는다. 이렇게 얻은 고품질의 영상 데이터는 자회사인 에스아이아이에스(SIIS)와 에스아이에이(SIA)가 보유한 위성영상 분석 솔루션을 통해 국내와 해외에 공급할 예정이다. 교통 상황 파악, 작황 분석, 안보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정보인 만큼 최근 위성 서비스 사업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쎄트렉아이는 스페이스아이-T를 내년 처음 발사해 3기를 추가로 개발해 쏘아올릴 계획이다. 군집 위성으로 운용해 영상 품질을 높이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첫 제품을 만드는 데는 3년 이상이 걸렸으나 다음 위성부터는 제작 기간도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같은날 경기 용인에 있는 한화시스템 지상관제센터에서는 8명의 직원이 지난해 12월 궤도로 쏘아 올린 ‘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서는 여러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했다. 위성과 지상의 통신 상태, 신호 세기, 전력 생산률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다.
정해원 한화시스템 위성시스템 전문연구원은 “현재 위성의 운영과 교신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며 “가령 전력 생산량이 떨어지면 이 곳에서 자세제어 명령을 보내 태양전지판을 조절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궤도에 안착한 소형 SAR 위성은 지구를 공전하면서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상국과 교신을 주고받고 있다. 남아공 지상국에서는 위성의 상태만 수신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위성에 명령을 내리고 데이터도 내려받을 수 있다. 하루에 15바퀴를 도는 만큼 항상 한국 지상국과 교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형 SAR 위성의 촬영 임무가 잡히면 연구원들은 바빠진다. 한국 지상국과 교신이 가능한 기회는 하루에 6번 뿐, 이마저도 궤도에 따라 3~11분에 불과하다. 정해원 한화시스템 위성시스템 전문연구원은 “위성 임무를 위한 절차는 연구원들이 직접 세워 교신 가능한 시간에 위성으로 전송한다”며 “빠른 임무 수행을 위해 최단시간 내에 임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화시스템은 자체 위성 운용을 통해 위성 영상 정보를 활용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고해상 위성 이미지 분석을 통한 환경 모니터링이나 지리 정보를 이용한 지도 제작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SAR 위성은 군사용으로도 많이 사용하는 만큼 정부도 중요한 고객이다.
한화는 발사체부터 위성까지 모든 사업을 한데 묶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뒤를 이을 차세대발사체 사업에도 참여해 정부와 손잡고 국내 발사체 기술을 고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상업화를 준비하고 있는 누리호를 통해서는 국내외 기업에서 제작한 위성을 쏘아 올려 국내 우주 산업 생태계의 중심 기업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쎄트렉아이와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위성도 포함된다.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사업부장은 “한국은 아직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과 민간 기업이 성장하는 ‘미드스페이스’에 머무르고 있다”며 “한화 스페이스 허브를 통해 우주 산업과 관련된 모든 벨류체인을 만들고 진정한 의미의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