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지역은 어디일지, 또 그들의 소비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매경이코노미가 빅데이터 전문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의뢰해 서울 주요 상권 22곳을 대상으로 외국인 신용카드 결제액 변화를 들여다본 배경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2023년, 두 해가 기준이다. 국내 외국인 카드 사용 점유율이 높은 하나카드와 비씨카드 결제 데이터와 나이스지니데이타가 보유한 상권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외국인 카드 결제 데이터 분석 결과 명동(왼쪽)은 소매점, 홍대(오른쪽)는 의류 업종 내 카드 결제 비중이 높았다. (김지연 인턴기자)
명동: 2위 상권과 격차 더 벌려
‘가성비 맛집’ 올리브영·다이소 덕
역시 ‘명동’이었다. 오랜 기간 방한 관광객 최고 명소로 군림해왔던 명동이 2019년 대비 2023년 신용카드 결제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상권으로 꼽혔다. 자치구별로 따지면 강남과 압구정·청담, 신사동이 포진한 강남구가 1위지만 개별 상권으로 보면 명동 상권이 가장 ‘핫’했다.
명동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가장 타격이 컸던 상권이었다. 하늘길이 막히며 주력이던 외국인 매출이 급감했고 공실은 크게 늘며 유령 상권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그 위상이 더욱 공고해진 모습이다. 2019년 2570억원이었던 명동 내 방한 외국인 결제액은 지난해 6189억원으로 3619억원 늘었다. 증가율로 따지면 140%가 넘는다. 지난해 기준 결제 2위 상권인 압구정·청담(3584억원)보다 2500억원 이상 많았다. 글로벌텍스프리가 집계한 지난해 전국 지역별 매출 1위 지역 역시 명동이었다. 과거보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이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인 증가세다.
관광객이 돌아오며 공실 문제도 해결됐다. 쿠시먼앤웨이크필드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기준 42.4%에 달했던 명동 상권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9.4%로 크게 개선됐다. 불과 1년 만에 서울 가두 상권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상권에서 가장 낮은 상권으로 변모에 성공했다.
업종별로 따지면 ‘종합소매점’ 매출 증가가 단연 눈에 띈다. 2019년 82억원에 불과했던 종합소매점 소비는 지난해 1384억원까지 1700% 넘게 증가했다.
중심에는 ‘올리브영’과 ‘다이소’가 있다. 올리브영은 달라진 K관광 트렌드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과거에는 주로 백화점·면세점에서 고가의 화장품을 구매하던 관광객이 많았다. 요즘에는 달라졌다. 가성비가 좋고 훨씬 더 다양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올리브영으로 발길이 몰린다. 실제 올리브영 지난해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660% 이상 늘었다.
올리브영이 명동에 쏟는 관심도 지대하다. 현재 명동에만 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해 명동에 선보인 최초 글로벌 특화 매장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은 방한 관광객 명소로 떠올랐다. 국내 올리브영 매장 중 가장 큰 350평 규모로, 일평균 3000명 방문객 중 90%가 외국인이다. 매장 내 외국인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안내 서비스는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확대했고 ‘올리브영 명동 타운점’ 전용 모바일 페이지도 만들었다. 명동 상권에 위치한 올리브영 지난해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7배 가까이 급증했다.
‘다이소’ 인기도 종합소매 매출 증가에 한몫했다. 생활용품뿐 아니라 뷰티·패션까지 외연을 확장한 가운데, K뷰티와 한국산 이색 제품에 관심 많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큰 인기다. 특히 다이소 명동역점은 ‘12층 석탑’이라는 별명으로 해외에서 유명하다. 2월 19일 다이소 명동역점을 방문해보니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층에는 계산을 기다리는 외국인 줄이 길게 이어졌다. 이날 명동 다이소를 방문한 한 중국인 관광객은 “명동 다이소가 중국 커뮤니티에서 유명하다. 제품이 워낙 다양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좋다. 오늘은 샴푸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외에도 이색 소매점이 즐비하다. 흉물처럼 붙어 있던 ‘임대 문의’ 딱지는 사라졌고 다양한 소매점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섰다. 직접 찾은 매장 입구마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K팝 전문 매장을 표방하는 ‘케이메카’가 대표적이다. 익숙한 아이돌 노랫소리에 이끌려 매장에 들어가면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큼지막한 얼굴이 가장 먼저 반긴다. 벽에 걸린 뮤직비디오 화면과 진열대에 놓인 수십 개의 아이돌 그룹 응원봉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자신만의 키링을 만들 수 있는 ‘와펜하우스’도 눈여겨볼 만했다. 와펜은 자수로 된 심벌마크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다. 관광객들이 고른 와펜은 현장에서 즉시 키링에 박음질된다.
종합소매 뒤를 이어 숙박(1141억원), 화장품소매(950억원), 한식(491억원), 스포츠레저용품(351억원) 순으로 결제액이 컸다. 숙박과 식사, 쇼핑을 한곳에서 해결하는 종합 상권 양상이다. 다만 과거 대비 결제 증가율로 따지면 화장품소매와 스포츠레저용품 증가폭이 크지 않았다. 전체 업종별 소비 비중에서 화장품소매는 2019년 24%에서 15%로, 스포츠레저용품 역시 10%에서 6%까지 감소했다. 제품 수요가 올리브영·다이소 같은 종합소매점으로 흡수된 경향이 크다.
국적별로는 일본 관광객 소비(1365억원)가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싱가포르(936억원), 미국(835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대만(256%), 태국(279%), 홍콩(153.2%) 등 아시아권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309%), 영국(351%) 등 서구권에서도 매출 증가가 큰 폭으로 나타났다. 과거 중국인 단체관광객 이미지가 강했던 명동 상권이 다국적 상권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홍대입구: 패션·호텔 성지로
강남·압구정은 특화병원 매출↑
명동 뒤를 이어 2019년 대비 2023년 외국인 카드 결제가 가장 많이 늘어난 상권은 홍대입구(2330억원), 강남(2181억원), 압구정·청담(1891억원) 순이었다. 서울 주요 상권 중 매출 증가액이 1000억원이 넘는 곳은 위에 언급한 4곳뿐이다.
상권마다 콘셉트가 명확하다. 홍대는 ‘의복·의류’, 강남과 압구정·청담은 피부과·성형외과 같은 ‘특화병원’에서 외국인 카드 소비가 크게 늘었다.
특히 홍대 약진이 눈에 띈다. 2019년 920억원에서 2023년 3250억원까지 253%에 달하는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강남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홍대=패션’ 수식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동일했다. 지난해 홍대 상권 최대 효자 업종은 의복·의류 항목(610억원)이었다. 2019년 275억원에서 지난해 610억원까지 급증했다. 패션 메카가 과거 가로수길·동대문 등지에서 홍대로 이동한 모습이다. 홍대서 K패션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무신사 플래그십 스토어 ‘무신사 홍대’가 대표적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직원 70%를 외국어 가능한 이들로 구성하는 등 신경을 썼다.
홍대 숙박도 ‘핫’하다. 인천공항에서 공항철도 직행 노선이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명동에 이어 제2의 숙박 중심지로 떠올랐다. 지난해 홍대 상권 숙박 결제는 602억원으로 2019년(28억원) 대비 급증했다. 외국인 사이에서 ‘홍대 핫플 호텔’이라고 불리는 라이즈호텔은 지난해 1분기 객실 매출이 2019년 동기 대비 44.8% 증가했다. 2022년 3분기 기준 외국인 투숙객 비율은 86%에 달했다. L7 홍대 등 4성급 호텔 역시 최근 예약 80%가 외국인일 정도로 성업 중이다. 제주항공이 운영하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서울홍대’도 외국인 투숙객 비중이 80%가 넘는다.
홍대가 패션이라면 강남과 압구정·청담은 ‘의료 메카’로 떠올랐다. K팝과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성형 관광’ 수요가 크게 늘어난 모습이다. 강남 일대가 유독 그렇다. 지난해 외국인 전체 신용카드 결제에서 ‘특화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62%에 달했다. 절대 결제액수 역시 396억원에서 1883억원으로 급증했다. 상대적으로 종합소매, 한식, 숙박 결제는 미미했다. 일본, 미국, 태국, 싱가포르,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등 성형 관광을 목적으로 강남을 찾는 관광객 국적도 다양했다.
강남과 가까운 압구정·청담 역시 특화병원 강세가 두드러졌다. 2019년 546억원에서 지난해 1073억원으로 두 배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 다만 강남보다는 관광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돼 있는 모습이다. 의복·의류(491억원 → 665억원)를 비롯해 숙박(31억원 → 448억원), 한식(113억원 → 300억원), 양식(67억원 → 167억원), 미용서비스(51억원 → 130억원) 등 다양한 업종에서 결제가 늘었다. 특히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운영하는 ‘누데이크 하우스’, ‘런던 베이글 뮤지엄’ 등 압구정 카페거리 인근에 위치한 디저트숍에 쏠리는 외국인 관심도 크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서울 성수동 외국인 카드 결제 전체 매출 중 의류, 패션잡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사진은 성수에 위치한 ‘락피쉬웨더웨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고객들. (에이유브랜즈 제공)
뜨는 상권, 지는 상권 어디?
성수·신촌 웃고 신사·잠실 울고
절대적인 결제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증가율로 따지면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는 상권도 여럿이다.
성수동이 대표적이다. 2019년 카드 결제 49억원에서 지난해 527억원까지 1000%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 성수는 홍대에 이은 ‘패션 성지’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필하는 모양새다. 의복·의류 매출이 19억원에서 222억원으로, 같은 기간 의류를 제외한 신발·가방 등 패션잡화 업종 매출은 10억원에서 104억원까지 10배 이상 늘었다. 의복·의류와 패션잡화가 성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훌쩍 넘는다. 글로벌텍스프리에 따르면 성수에서 택스리펀을 신청한 의복·의류 매출은 5억원에서 2023년 58억원으로, 화장품은 1000만원대에서 33억원까지 껑충 뛰었다. 일본·중국·대만·홍콩 등 동아시아 지역 국가에서 매출이 특히 컸다.
최근 성수를 업무·관광차 방문했다는 영국인 A씨는 “디올 성수는 해외에서도 꼭 찾아보고 싶은 명소로 이름났다”며 “성수에는 K패션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래그십 스토어가 많아 최근 외국인 사이에서도 쇼핑 성지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친구 추천을 받아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촌·이대(523%)’와 ‘인사·삼청동(182%)’도 평균을 웃도는 결제 증가율을 보였다. 신촌·이대는 인접한 홍대 상권 외국인 관광 수요 증가 반사이익을 보는 중이다. 상권 내 위치한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외국인 유학생과 그들을 보러 방문한 가족·친지가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자주 찾는다. 인사·삼청동은 숙박업 매출이 크게 늘었다. 2019년 85억원에서 2023년 255억원으로 급증했다. 광화문·경복궁 등과 가까운 데다 명동·홍대 등 인기 상권으로 이동이 편리한 입지가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옥스테이나 게스트하우스도 다수 자리하고 있다. 한식을 비롯해 전통적인 K컬처를 경험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난 점도 인사·삼청동 상권에는 호재다. 한식(31억원 → 95억원) 매출이 크게 증가했고 서적(19억원 → 66억원), 악기·공예(17억원 → 49억원) 업종 결제도 늘었다. 타 상권 대비 상대적으로 미국·아일랜드·오스트레일리아 등 서구권 국가 방문 비중이 크다는 점도 눈에 띈다.
모든 서울 상권이 웃고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해진 상권도 있다. 주변 인기 상권으로 외국인 방문이 쏠리면서 오히려 매출을 빼앗긴 곳도 있다.
가로수길을 중심으로 한 신사동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카드 결제가 2019년 99억원에서 2023년 89억원으로 오히려 10% 가까이 빠졌다. 신사동 주력 업종이던 특화병원(44억원 → 30억원)과 의복·의류(26억원 → 23억원), 패션잡화(8억원 → 6억원) 모두 이전 대비 소비가 줄었다. 특화병원은 인근 강남역과 압구정·청담 상권으로, 의류와 패션잡화는 홍대·성수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다. 남산공원(-0.8%)과 망원동(-2.4%) 역시 과거 대비 외국인 카드 결제가 줄었다.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최근 성장한 상권도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여의도(1185억원 → 1791억원)는 결제 자체는 늘기는 했지만 전체 평균(147%)에는 크게 못 미치는 51.2% 증가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잠실(192억원 → 83억원)은 오히려 이전 대비 카드 결제가 크게 줄었다.
주시태 나이스지니데이타 실장은 “이번 집계에서 백화점 등 카드 결제가 빠진 탓이 크다”면서 “대형 쇼핑몰이 위치한 상권 외에도 중국인 방문 비중이 높은 상권 역시 실제보다 저조한 매출 증가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 중국인 관광객은 신용카드 대신 알리페이 등 간편결제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8호 (2024.02.28~2024.03.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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