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문화가 전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 가운데 올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비단 현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전시가 있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7월 16일까지 열린 '인쇄하다 : 구텐베르그의 유럽'이었다. 그곳에서 우리의 직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인쇄 혁명의 첫 포문을 열 기회를 우리에게 넘겨주듯, 관람객들을 처음 마주한 것은 직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부처와 고승의 가르침을 수록하고 있있는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서 제작됐다.

과거의 인쇄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직지가 처음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직지의 가치는 1972년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1973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 이후 최근까지 직지 실물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이 전시회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 가운데 하나인 인쇄술을 조명하는 행사였다. 직지와 구텐베르크 성경을 포함해 27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직지는 결국 인간애를 바탕에 둔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인쇄술의 발전 과정과 그 성공의 비밀을 추적하는 일은 그 중심에 인간애,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는 일이다. 즉 인간의 능력을 크게 도약하게 한 앎으로의 접근을 대중에게 확산시킨 혁신이다. 14세기 한국에서 발견된 금속활자본, 15세기 중반 유럽의 책 생산기술에 쾌거를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는 인간이 앎을 통해 이뤄낼 것들, 그 가능성을 응축한 미래지향적 실험이자 도전의 여정이다.

프랑스의 주요 신문사들은 일제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대해 관심을 보였다. 르 포앙지는 “구텐베르크보다 휠씬 이전에 한국인들은 인쇄기를 발명했다. 1377년의 책, 역사적 보물 직지가 파리에서 7월 16일까지 전시되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르몽드를 비롯하여 프랑스 매체들 또한 한국의 직지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헌사이자 애정어린 존경을 담고 있다.
직지심체요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직지심체요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이 전시는 유럽의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통해 제작된 희귀본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프랑스의 최고의 목판 프로타 Bois Protat(약 1370-1380년) 또한 전시되고 있어 이목을 끌었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수난도가 목판에 새겨져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의 십자가에 묵힌 예수의 왼쪽 팔과 로마 병정들의 모습이다.
프랑스의 최고의 목판 프로타, Bois Protat 약 1370-1380년경 목판에 예수 수난상을 새겨 넣었다. 지금은 예수의 왼쪽 팔 부분과 병정들만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최고의 목판 프로타, Bois Protat 약 1370-1380년경 목판에 예수 수난상을 새겨 넣었다. 지금은 예수의 왼쪽 팔 부분과 병정들만 볼 수 있다.
우리 활자인쇄술이 구텐베르크 인쇄술보다 78년이 앞선다는 사실이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이룬 많은 업적들을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 만들어낸 성과는 인문주의자, 예술가, 종교개혁가에게로 이어진 혁명의 파동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의 출판물들은 중세의 길고 긴 어둠의 시기, 앎을 독점하는 시대의 종식을 가져왔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근대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가져온 것들은 인간애에 기반한 지식 빅뱅이라 할 수 있다. 전시된 책들은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의 증언자 혹은 목격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유럽 전역에 인쇄술을 전파시킨 여정은 실로 위대한 여정이라 이름 붙일만하다. 이 전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인쇄본에 대한 헌사였다. 우선 그가 이뤄낸 것들을 살펴보자.
구텐베르크 성경,  1455년, 구텐베르크의 첫번째 인쇄물로 42성경이라고 불린다. 모두 180권이  양피지와 종이로 인쇄되었다.
구텐베르크 성경, 1455년, 구텐베르크의 첫번째 인쇄물로 42성경이라고 불린다. 모두 180권이 양피지와 종이로 인쇄되었다.
구텐베르크는 15세기 중반에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고, 이것을 포도주 증유에 썼던 압착기를 사용하여 양피지와 종이에 찍어냈다. 그가 처음 인쇄한 것은 42행 성경이다.

그의 인쇄물에는 여러 장점이 있는데 활자가 사각 정형으로 만들어져 글자 배열이 가지런하며, 활자틀 또한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행과 행의 간격이 일정하고, 칼라 잉크까지 번지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 “내가 성경 전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오류도 없이 매우 깔끔하고 정확한 글씨로 된 여러 권을 보았소, 당신도 안경 없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오” 이는 에네아 실비오 파콜로미니 Enea Silvio Piccolomini가 구텐베르크 성경에 관하여 후안 데 카르바할 Juan de Carvajal 추기경에게 한 말인데 이를 통해서도 구텐베르크 성경의 완성도를 짐작해볼 만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번 전시에 독일 마인츠시에 있는 구텐베르크 미술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청주의 고인쇄박물관은 2023년 4월에 직지 복분을 마인츠시에 전달하였다. 직지 복분을 상시 전시하기 위한 것이고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 2024년부터 구텐베르크 미술관에서 직지가 상설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2001년 9월 직지는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으로써 우리의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혁신성과 창의성이 경제 발전, 과학기술를 비롯하여 지금 한류의 풍부한 동력, 마르지 않는 창작력의 근간임 증명하고 있다.
국립 프랑스 미술관 큐레이터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성경을 직접 인쇄해서 보여주었다.
국립 프랑스 미술관 큐레이터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로 성경을 직접 인쇄해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