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12단 제품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3분기에 양산하겠다고 2일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이날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HBM은 올해도 솔드아웃(완판), 내년도 대부분 솔드아웃”이라며 “12단 제품 샘플을 이달 중 고객사에 전달하고, 3분기 양산을 준비 중이다”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메모리 반도체 만년 2등이던 SK하이닉스는 2022년 하반기 시작된 ‘AI 붐’을 타고 AI 메모리 분야 1위 자리에 올랐다. 2023년 반도체 불황에도 HBM을 앞세워 적자 폭을 줄였고, 작년 4분기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도 SK하이닉스(2조8860억원)가 삼성전자(1조9100억원)를 앞섰다. 이 같은 SK하이닉스의 약진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HBM 같은 차세대 반도체를 선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천=장형태 기자, 이해인 기자

그래픽=김하경

불과 2년 전인 2022년 1분기만 봐도 SK하이닉스 매출(12조1600억원)과 영업이익(2조8600억원)은 같은 기간 삼성전자 매출의 절반, 영업이익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AI메모리 시장 우위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곽 대표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HBM 기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SK는 2012년 타사들이 메모리 불황으로 투자를 10%가량 줄일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려왔고 그때 (미래가) 불확실하던 HBM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AI 반도체 핵심 HBM

HBM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HBM은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고성능 메모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D램을 옆으로 이어 붙이는 것보다,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공간을 효율화한 제품이다. 이후 5세대(HBM3E)까지 오면서 단수는 4단, 8단, 12단으로 높아지고 동시에 용량은 커지면서 속도는 빨라지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12월 2세대인 HBM2를 SK하이닉스보다 먼저 선보였다. 하지만 이후엔 속도전에서 밀렸다. 가격이 비싸고, 쓰임새가 적어 삼성전자가 개발과 양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반전은 지난해 일어났다. 챗GPT가 이끈 AI 붐에 따라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HBM의 수요와 몸값도 높아진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김주선 AI 인프라 담당 사장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메모리가 AI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간 4세대 모델인 HBM3를 엔비디아에 사실상 독점 납품했다. 업계는 현재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에서 HBM과 고용량 D램과 낸드 등 AI 반도체 비율이 20% 이상인 것으로 추산한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AI 메모리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AI 메모리가 전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율은 지난해 5%에서 2028년 61%로 크게 오를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지난 2월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단 적층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 8단보다 AI 학습 훈련에서 평균 34% 속도가 빠른 제품이다. 현재 엔비디아에서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고 올 2분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새 공장 계획도 추진

SK하이닉스가 3분기 양산할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12단 제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날 곽노정 대표가 ‘완판’을 선언한 것은 이미 엔비디아와 계약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충북 청주에 지을 M15X공장 조감도./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차세대 반도체 생산기지가 될 청주·용인·미 인디애나 공장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SK하이닉스가 20조원을 투자해 청주에 짓기로 한 M15X 공장은 내년 11월 준공 후 2026년 3분기부터 본격 차세대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 및 생산기지로 활용된다. 415만㎡(약 126만평) 부지에 총 4기 팹을 지을 예정인데, 먼저 첫 팹은 내년 3월 공사에 착수해 2027년 5월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인디애나에 5조200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패키징 공장은 2028년 HBM 양산을 목표로 한다.